빈 곳의 바깥에서,

다시

Am Jenseits der Leere, wieder


2021년 8월 22일 오후7시

성암아트홀

빈        곳 을        채 우 는        언  어

빈 곳을 채우는 언어 신문선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채움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인류는 계속해서 빈 곳 을 찾아 문명과 지식을 채워왔다. 그 결과, 이제는 새로운 행성을 필요로 할 정도로 지구는 구석구석 채워졌으며 우리는 매일 감당하기 힘든 양의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마주한다. 아 마도 먼 과거에는 생존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그리고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행해졌을 채움이라는 행위는 어느샌가 의식과도 같은 도착증이 되어 소비주의의 형태 로 오히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은 현재 인류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 가 아닐까 싶다. 한국 음악계 역시도 고민에 동참하고 있다. 월간 리뷰의 김종섭 발행인은 8 월호 칼럼에서 종이를 사용하지 않는 공연을 제안했다. 나 역시도 환경적 지속가능성과는 조금 결은 다르지만 지속가능한 현대음악에 대한 고민해 왔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큐레이팅의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언뜻 보기에는 지속 가능성과 새로운 음악은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지속 가능성 자체가 실현 가능 한 절충이라는 사실을 언급하고 싶다. 지속가능성이란 단순한 절약이 아닌, 빈 곳을 채워야만 하는 우리 의 숙명을 받아들이되 그 빈 곳을 의미있고 현명하게 채우자는 것이다.) 공연을 위해서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나는 음악 애호가로서 작품이 제공하는 특별한 경험에서 발생하는 미학적 부가 가치는 투입된 자원을 상회하고도 남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언어를 통해 그 특별한 경험을 극대화 하고 무대에서의 울림을 언어의 형태로 변환하여 조금 더 오래 지속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해 소리가 비어있는 공연 전

과 후에 언어를 채우는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작업이 순전히 인간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내 작업은 이제부터 설명할 공연과 음악에 대한 미학적 고민에서 먼저 출발했다. 20세기를 거치며 음악은 크게 변화했다. 음악은 “소리나며 움직이는 형식들”이라던 에두아 르트 한슬릭(Eduard Hanslick)의 정의는 이제 후하게 쳐 줘도 절반만 맞는 이야기가 되었다. 오늘날 작곡된 대부분의 음악은 음악 자체의 내재적 요소만으로는 의미체계를 형성하지 못 한다. 철학자 해리 레만(Harry Lehmann)은 이러한 현상을 “내용미학적 전환”이라고 부르는데, 레만에 따르면 1990 년대의 내용미학적 전환 이후에 발생한 작품의 내용은 (물론 정도 의 차이는 있지만) 작가의 발언에 기초한 컨셉을 통해 작품의 내재적 요소를 관조하는 방식의 미적 경험이라고 한다. 이 글에 어울리는 언어로, 그리고 나의 주장을 섞어 다시 설명하자면 오늘날의 작품은 완전히 자율적이지 않다. 작품은 세상과 관계를 형성하며 그 의미체계를 완성한다. 그리고 무수 한 관계의 가능성을 잠재한 작품을 어느정도 정제된 맥락에 놓이게 하는 것은 작가의 입이 나 펜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공표된 컨셉이다. 즉, 작품은 관객의 지경을 통해 세상과 관계 한다. 그리고 작품과 관객 사이에 작가의 지경이 놓이며 다시금 두 개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 할수있으며, 그 관계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빈 곳이 존재하게 된다. 나는 주로 작가의 지경을 소개하며 언어를 통해 그 빈 곳을 채워보려 한다. 나의 시도들은 공연을 위해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프로젝트 블로그에서 관찰할 수 있다.

글 | 신 문 선

project ensemble morph


이효원, 리코더
정나영, 클라리넷
진유영, 김아리, 타악기
황은아, 피아노
김규현, 인성
방세원, 바이올린
조푸름, 비올라
황규빈, 첼로
전지은, 지휘

Programm

임찬희
기억으로부터의 저릿함 (2021, UA)
for amplified recorde, amplified bass clarinet, amplified percussion and live electronics


이덕빈
소비된 변주곡들 Consumed Variations (2021, UA)
for sextet, electronics, webpage and video


전지은
화자가 상대방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에 관한 이야기 (2021, UA)
for 4 voices


이아름
Waters (2021, UA)
for septet and electronics


이의경
Higher, even higher
a sonic commentary about the sense of capitalistic realism (2021, UA)
for bass recorder, vibraphone, keyboard, electronics and video


정세훈
낯선 나라들로부터 Von fremden Ländern (2021, UA)
for recorder, percussion, piano, violin, cello, loudspeakers and video